ⓒ 어패럴뉴스 박선희기자, sunh@apparelnews.co.kr
2018년 04월 16일
“대량 생산, 대량 판매의 시대가 저문다”
4차 산업 혁명은 패션 시장에 어떻게 작동하나
세계 패션 시장은 지금 대량 생산의 대량 판매 시대를 넘어 맞춤 생산의 대량 판매라는 혁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대량 생산의 대량 판매가 심각한 비효율에 봉착했고, 개인화에 따른 맞춤 생산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맞춤 생산은 사람의 노동력과 긴 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량 판매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이 개인화된 제품의 대량 판매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 세계 패션 업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슈는 미국의 거대 온라인 기업 아마 존닷컴이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 기술, 일명 ‘아마존 특허’를 개발하면서 촉발됐다.
아마존 특허는 디지털 재단과 디지털 프린트, 로봇 봉제 등에 이르는 디지털 생산 기술과 신체 사이즈 측정 기술, VR, 드론 택배,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올리고 아마존이 채택하는 플랫폼(merch:머치) 등 디지털 4.0 기술이 총망라된 집약체다.
아마존은 이 기술을 통해 티셔츠 품목에 대한 맞춤복 대량 판매를 시작했고, 향후 2년 내에 모든 아이템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세계의 장벽이 사라지면서 마케팅과 판매는 이미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단계에 진입했지만 남은 문제는 생산의 디지털라이제이션에 있다. 지금 세계 패션 시장이 꿈꾸는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은 곧 생산 혁명에서 출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국내 패션 업계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디지털 4.0 기반의 패션 산업 혁명은 바로 다름 아닌 패션 기업 내부의 디지털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판매와 마케팅을 넘어 생산까지 디지털라이 제이션에 이르게 되면서 개별 패션 기업의 내부 업무 방식 역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이 아닌,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 사업을 고수한다 하더라도 인건비, 소싱 비용 상승, 비효율에 따른 재고 부담 상승 등 패션 업계가 봉착한 난제는 수두룩하다.
디지털화를 통한 네트워크를 통해 그러한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 4일과 5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글로벌 디지털 솔루션 기업 렉트라의 2018 패션 VIP 이벤트 현장에서는 디지털 4.0 기반의 혁신에 대한 세계 패션 업계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패션 고우즈 디지털(Fashion goes digital)’을 주제로 열린 이번 이벤트에서 렉트라는 4.0 기반의 기술들이 패션 산업에 어떻게 구현되는지 소개했다.
지난해 이벤트는 ‘PLM(Product Life Cycle)’을 주제로 했다면 이번에는 MTM(Made to Measure:맞춤생산의 대량화)에 방점이 찍혔다.
PLM은 기업 내부가 디지털화되지 않고 앞으로의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슈였다. 국내 패션 기업들도 흔히 사용하는 ERP가 디자인 부서를 제외한 업무의 전산화라면 PLM은 디자인(디자인, 패턴, 소싱 등) 업무의 전산화를 지원하는 솔루션이다.
렉트라의 패션 PLM 4.0은 패션 회사의 디지털 시장 진입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히 개발된 사용자 친화적 모듈형 솔루션이다.
이 솔루션을 통해 패션 회사들은 지리적 위치에 상관없이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팀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에 동시 접근이 가능하고 투명하게 소통한다. 또 모든 상품의 개발과정을 추적할 수 있고, 축적된 수 년간의 데이터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기존 패션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ERP, SCM, POS, CAD 등과의 연동도 가능하다.
MTM은 더 근본적인 패션 시장의 변혁인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에 대한 이슈로, 렉트라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통합 솔루션 ‘커팅룸 4.0’을 이번 이벤트에서 세계 최초로 소개했다.
해당 솔루션은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AI 등 인더스트리 4.0기반의 기술이 총망라된 것으로, 아마존의 디지털 생산이 단순한 아이템에 아직 국한되어 있는 한계를 뛰어 넘는 기술을 소개했다. 하이엔드 제품의 맞춤 생산까지 가능한 4세대 재단기 벌가(Virga)를 비롯해, 데이터를 축적, 가공하고 이를 회원사들과 공유하는 빅데이터 솔루션까지 선보였다.
이 자리에는 남성복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으로 큰 성공을 거둔 중국의 따양과 온라인몰 ‘조조타운’으로 시가총액 2조엔을 돌파한 일본 스타트투데이 등이 참가했다. 스타트투데이는 최근 착용만으로 전신 사이즈를 측정해 전송하는 ‘조조수트’를 개발해 세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이들을 비롯해 이 자리에 모인 세계 100여개 패션 기업들의 관심사는 바로 ‘매스 커스터마이 제이션’이었다.
오랜 기간 인간의 ‘감’에 의존했던 패션 산업이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밟게 될 넥스트 스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인터뷰 – 이브 델하예 렉트라아시아 디렉터
“패션은 복잡한 데이터를 다루는 산업, 디지털라이제이션은 필수”
패션 전문 디지털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
디지털 4.0 기반 소프트웨어 영역 키운다
프랑스 파리와 보르도가 본거지인 렉트라는 40년 전 패션 재단기로 시작해 CAD, PLM 등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 온 디지털 솔루션 기업이다.
통상 솔루션 기업의 경우 IT 기반인 경우가 많아 패션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은 렉트라 거의 유일하다. 국내에는 10여 년 전 세워진 에이전시를 2014년 본사가 인수하면서 렉트라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직진출했다. 그동안은 재단기 수출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영업을 영위해왔으나 지난해부터 패션 PLM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 영업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달 말 방한한 이브 델하예 렉트라아시아 디렉터를 렉트라코리아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10여 년 간 중국과 일본, 한국을 오가며 아시아 사업을 총괄해 왔다.
그는 “렉트라는 뿌리 자체가 패션에 있다. 기술을 파는 기업이 아닌 패션 비즈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을 파는 기업이라는 비전도 그 때문이다. 패션 기업의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컨설팅을 통해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명 프로페셔널 서비스(PS)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 강조했다.
사실 PLM 즉, 상품 수명 주기 관리를 일컫는 솔루션의 개념이 국내에 소개된 지는 오래다. 일부 패션 대형사들이 디자인 업무의 디지털화와 외부 소싱을 연결하는 인프라 시스템 구축에 착수하면서 이슈가 된 바 있다.
이브 디렉터는 “몇 년 전까지는 상품 개발 업무와 관련된 솔루션을 통째로 제안하면서 부서 간 협력, 비용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는 상품 개발 업무를 디자인, 패턴, 소싱 등 8개 부문으로 나누어 각 기업이 선택하도록 하는 모듈형으로 전환해 문제를 해결했다. 하나의 허브에 단계별로 모듈을 추가해 나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패션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공급망과 판매 채널이 다양하고 계절, 지역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매우 복잡한 개발 및 유통 프로세스를 갖는다. 또한 패션이 필요로 하는 창의성은 표준화가 어려워 디지털 시스템과는 종종 대치되는 개념으로 인식된다.
이에 대해 그는 “가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패션의 복잡성은 다른 제조업에 비해 더 많은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일관성 있는 데이터 공유를 통해 디자인부터 납품까지 반복과 변동을 잘 관리하면 어떤 산업보다 이점을 누리게 된다. 창의력이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히스토리와 과거의 데이터에 작은 변화를 가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기존 국내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ERP와 SCM 등의 시스템과의 연계다. 렉트라는 제품 개발 툴인 CAD를 비롯해 기존 사용하고 있는 전산 시스템과의 인터페이스 구현이 가능한,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유일한 업체다.
이브 디렉터는 “일하는 방식의 디지털화,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데이터에 의한 투명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은 이제 패션 업체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다. 경영자는 모바일을 통해 특정 상품의 총생산비용, 납기, ROI에 이르는 데이터를 한 눈에 확인하며 동시다발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추적을 위한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해 데이터를 사용하는 ‘데이터 드리븐’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기업들의 디지털 내재화에 대한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아무리 탁월한 기술이 나와도 사용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4.0을 기반으로 한 패션 산업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디지털 내재화에 실패하게 되면 자칫 고립을 자초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충고다.
마지막으로 이브 디렉터는 “멀리 갈 것 없이 당신의 디자인실이 하루 중 디자인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시간 내외다. 패션 회사의 디자인실은 내부 뿐 아니라 외부 다수 업체들과도 일을 해야 한다. 작지와 주문서, 전화와 팩스가 사라진 디자인실을 생각해 보면 쉽다. 상사가 휴가나 출장을 갔다고 결제를 기다리는 일도 사라지게 된다. 아마존 같은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까지 가지 않더라고 비효율을 줄이고, 의사결정의 정확도를 높이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인프라 디지털라이제이션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